조조는 악인처럼 보인다. 서주에서 사람을 죽였고, 군량이 부족하자 책임자를 베었으며, 끝내 순욱까지 잃었다. 역사는 그를 간웅이라 불렀고, 소설은 그 이미지를 굳혔다.
그러나 조조를 단순한 악인으로 읽는 순간, 더 중요한 걸 놓친다.
조조의 잔혹함은 성격이 아니라 자리에서 나왔다. 악해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은 인간이 결국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구조가 있었다.
서주 대학살은 조조의 가장 어두운 기록이다. 부친 조숭이 죽은 뒤, 조조는 서주를 공격했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분노의 복수극처럼 보인다. 실제로 분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감정 폭발로만 읽으면 조조를 놓친다.
후한 말은 법이 무너진 시대였다.
보복하지 않는 군주는 약하게 보였고,
약한 군주는 곧 무너졌다.
군벌은 힘으로 질서를 증명해야 했다. 조조는 알고 있었다. 이 시대에 분노는 감정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가 된다는 걸.
옳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 선택이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조조는 악인이기 전에, 난세의 문법을 정확히 이해한 권력자였다.
군량이 부족해졌을 때, 조조는 책임자를 처형했다. 많은 사람들은 잔혹함만 본다. 물론 잔혹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건 따로 있다. 군량 부족이 알려지는 순간, 군은 무너진다. 공포는 탈영을 낳고, 탈영은 붕괴를 부른다. 그때 필요한 건 진실보다 질서다.
군량 부족 공개 → 공포 → 탈영 → 붕괴
책임자 처형 → 질서 유지 → 체제 생존
조조는 착한 선택을 버리고, 살아남는 선택을 택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비겁하다. 그러나 창업군주에게 체제 붕괴는 개인 윤리보다 먼저 오는 문제다. 그런 인간이 천하를 얻는다.
그리고 끝내 조조는 순욱을 잃는다. 순욱은 단순한 참모가 아니었다. 조조의 조직을 설계한 공동 창업자였다. 곽가도, 순유도, 정욱도 순욱이 끌어들였다. 조조의 천하는 상당 부분 순욱이 깔아놓은 판 위에 세워졌다.
바로 그래서 위험했다. 너무 많은 걸 알고, 너무 깊이 들어와 있는 공신은 창업군주에게 부담이 된다.
더구나 순욱은 조조와 다른 목적지를 보고 있었다. 순욱은 한나라의 재건을 원했다. 조조는 어느 순간, 한나라 이후를 보기 시작했다.
조조가 보낸 빈 찬합은 협박이 아니었다.
마지막 예우였다.
읽을 수 있는 자에게만 통하는 방식.
조조는 순욱이 이해할 거라 믿었고, 순욱은 조조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20년 동행한 두 천재의 마지막 대화였다.
조조는 선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멍청한 악당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권력이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잔혹했고, 그래서 살아남았다.
창업군주의 비극은 악해져서 욕먹는 데 있지 않다.
악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너무 빨리 이해하게 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