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악인처럼 보인다. 공신을 죽이고,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끝내 한나라를 삼키려 했다. 역사가 그를 간웅으로 불렀고, 소설이 그 이미지를 굳혔다. 그러나 그 행위들을 악의가 아니라 창업군주의 숙명으로 읽으면 —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악인은 선택으로 만들어지지만, 창업군주의 행동은 자리가 만든다.
위대한 공신은 창업군주에게 부담이다. 이건 조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방은 한신을 죽였고, 주원장은 개국공신을 정리했다. 너무 많이 알고, 너무 큰 공이 있고, 너무 깊이 들어와 있는 사람 — 아무리 충성스러워도 새 질서를 세우는 자에게는 결국 감당해야 할 존재가 된다. 역사가 반복하는 이 공식에 예외는 없었다.
순욱은 조조의 참모단을 설계한 사람이었다. 곽가도, 정욱도, 순유도 사실상 순욱이 데려왔다. 조조의 천하가 순욱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창업군주 입장에서 그런 인물이 내부에 있다는 건 — 아무리 충성스러워도 — 부담이다. 순욱은 자신의 위대함 때문에 위험해진 셈이었다.
순욱은 조조의 천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순욱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순욱이 위공 칭호에 반대한 건 반역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한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조조를 도왔다. 조조가 한나라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가는 순간, 순욱의 명분은 흔들렸다. 같은 길을 20년 걸었는데, 끝에서 목적지가 달랐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조조가 가는 곳이 자신이 원한 곳이 아니었다.
조조는 빈 찬합을 보냈다. 직접 처형이 아니었다. 그 선택이 의미심장하다. 20년을 함께한 사람을 그냥 죽일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순욱이라면 읽을 거라는 걸 알았던 건지 —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빈 찬합은 조조가 순욱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예우였다. 네가 읽어라, 네가 선택해라.
순욱은 읽었다. 천재라서. 둔한 사람이었으면 못 읽고 살았을지 모른다. 양수는 계륵을 읽었다고 떠들다가 잘렸다. 순욱은 빈 찬합을 읽고 조용히 선택했다. 읽는 능력이 죽음을 만든 셈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사마의였다. 곽가처럼 전부 꺼내지 않았고, 순욱처럼 읽고 선택하지 않았으며, 양수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읽었지만 숨겼다. 그리고 기다렸다. 조조도, 순욱도, 곽가도, 양수도 다 간 자리에서 — 사마의만 남았다.
삼국지의 진짜 승자는 가장 잘 싸운 자가 아니었다. 가장 오래 숨은 자였다.